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번역의 탄생 envy

번역의 탄생 / 이희재 / 교양인

이 책에는 '한국어가 바로 서는 살아 있는 번역 강의'라는 부제가 붙어있다.
그만큼 한국어에 대한 애정을 듬뿍 담고 있는 책이라 하겠다. 실제 내용을 봐도 어떻게 하면 한국말이 살아 있는 번역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많이 담겨 있다.
몇 권 되지는 않지만 대학시절 이런저런 번역서를 읽으면서 원문보다도 더 어렵게 쓰인 문장 때문에 한국말을 독해해야 했던 유쾌하지 않은 경험을 한 큐에 날려버릴 수 있는 통쾌한 책이라 아니할 수 없다. 많은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고 넘어가지만 우리는 자연스러운 입말까지도 심하게 왜곡된 언어생활을 하고 있다. 열심히 하지는 않았지만 중고등학교 때 영어공부를 하면서, 독해를 한답시고 영어 단어를 외운답시고 알게 모르게 익혀버린 한문투성이 말이나 번역투 문장, 좀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신문의 헤드라인으로 나오는 명사형 끝맺음 따위에서 그렇게 익혔다.

그보다 더욱 큰 문제는 영한사전과 일한사전에서 나온다. 국어 문법이 어쩌네 맞춤법이 저쩌니 하면서 그 '법'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틀렸다고 강변하는 양반들께서는 그 '법'을 세우는 기초를 일어사전에서 가져오셨다. 그러다 보니 한국말이 뻔히 있는 낱말도 발음만 한국식으로 한 일본 한자어를 그대로 가져다 썼고, 영한사전을 만들면서도 영일사전을 그대로 옮겨다 놓으신 거다. 그 사전을 가지고 딸딸 외우는 공부를 하다 보니 당최 영어를 한국말스럽게 옮기지 못하는 결과가 나타났고 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우리가 쓰는 입말까지도 바뀌어버렸다.

저자는 번역하는 대상(출발어)보다는 번역하는 말(도착어)에 더 능숙해야 번역을 잘 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. 무척 공감한다. 전문 번역인이 아닌 좀 능력 있던 대학생, 교수, 작가들이 급하게 번역한 책들을 보면서 한국어 임에도 다시 독해를 해야만 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아주 당연하게 번역은 '도착어'에 정말 능숙한 사람이 해야 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.

"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." 아~ 씨발. 이게 무슨 뜻인지 대충 안다는 듯 넘어간 뒤로 도대체 저 말이 어디서 나온 것일까, 원문이 뭘까 하고 고민했던 걸 생각하면 그 번역의 선구자 노릇을 했던 대학생, 교수, 작가 분들의 노고를 치하하면서도 속은 부글부글 끓곤 했다.

책에 있는 모든 내용을 다 맹신하는 것은 아니지만, 꼭 번역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 아니래도 '번역의 탄생'은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한 책이라 확신한다. 기계적인 독해를 한 뒤에 한국말로 매끄럽게 만들지 못해서 고민하는 사람, 나처럼 영어 독해 자체가 좀 어렵고 무서웠던 사람, 많은 사람들에게 자기가 쓴 글을 내보이며 먹고 사는 사람, 이래저래 한국말에 좀 관심이 있는 사람, 이 모두에게 좋은 지침서가 되지 않을까 한다.

책을 산 뒤로 첨으로 저자에게 메일을 보냈다. 좋은 책 써줘서 고맙다는 인사도 했고, 책 내용 중에 몇몇은 이렇게 고치면 좋겠습니다 라고 건방진 의견도 전달했다. 그런데, 저자께서 바로 답장을 보내주셨다. 내 건방진 의견이 일리가 있으며 다음 쇄를 낼 때 참고하시겠단다. 아, 뿌듯하다.


*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.
악화(惡貨)가 양화(良貨)를 구축(驅逐)한다.
대략 한국말로는 '나쁜 돈이 좋은 돈을 내쫓는다(대체한다).' 정도 되겠다.
그 옛날엔 악화가 惡化인줄 알았다. '나쁘게 되는 것이 좋게 되는 것을 쌓는다.' 이게 무슨 말이야?
대체 한국사람 중에서 '구축'이라는 단어를 '뭔가를 쌓는다(構築)'라는 뜻 외에 다른 뜻으로 사용하는 사람이 있을까?
그래서, 번역 아무나 하면 안 된다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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