강적이 나타났다.
경쟁상대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고, 설사 경쟁을 한다 해도 게임이 안 될 거라 생각했던 상대가 최근 도저히 뛰어 넘을 수 없는 벽으로 내 앞에 서있다.
[설날 전날에 안산에서 모자가 상봉했다. 아주 편하게 누워있는데, 아쉽게도 엄마랑 닮은 것 같다.]
도대체 경쟁구도가 성립할 수 없는 상대를 내 경쟁상대라고 생각한 거부터가 웃기는 일이었다. 싸움이 성립하지 않으므로 나는 늘 혼자 싸우고 그 때마다 지기만 했다. 그러면서 왜 전에는 내 편이었는데 이젠 내 편이 아니냐고, 나는 언제나 당신 편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주장하며 임자에게 다시 내 편이 되어달라고 협박을 했다.
아아.. 어쩌랴. 대세는 이미 내가 아니다. 아주 싸늘한 답변. "난 현결이가 더 중요해!"
강자와 약자가 싸울 때, 중립을 지키겠다고 가만히 있는 것은 강자를 돕는 것이다. 그 논리가 적용된 것인지, 아니면 그간 너무 편파적이었던 행동에 대해 반성을 하는 것인지, 그것도 아니면 이래저래 내가 쓰레기가 되어버렸거나 더 이상 쓸모가 없어졌는지 지금으로선 당최 알 수가 없다. 다만, 한가지 위안으로 삼을 수 있는 깨달음은 내가 사람이 됐든 사물이 됐든 뭔가에게 자꾸 뒤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그것을 놓치지 않으려 애를 쓰는 것은 그 대상이 나를 앞질렀기 때문이 아니라 내 스스로가 어디에도 안주하지 못하기 때문이란 사실이다.
내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조급한 마음이 생기고 그 조급한 마음이 점점 자라 정신이 불안한 상태까지 발전을 하는 것 같다.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런 빤한 싸움을 하겠다고 혼자서 경쟁구도를 세워 놓고 좀스럽게 술이나 퍼 마시고 술 김에 여기저기 문자질이나 하는 추태를 부릴 수 있단 말인가. 아... 쪽팔려.
외로운 것은 관계의 문제고 쓸쓸한 것은 존재의 문제라 했다. 관계 따위에 연연하지 않고 혼자 잘 살기 위해서, 그리고 무의미한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해서 죽어라 열심히 뭔가를 파고 들어야 한다. 그래야만 거기에 푹 빠져서 세상이 나만 두고 어디로 싹 사라지더라도 그저 재미있게 내 삶을 즐길 수 있게 될 것이다. 내가 쥐고 있는 모든 것을 놓고서 내 스스로 멋지게 서 있을 때, 그 모든 것은 다시 나를 바라보고 나와 친해지려 노력하게 될 거라 믿는다. 그렇게 되지 않는다 해도 현재로선 딱히 그거 말고 뭐 딴 방법이 없다. -.-
그렇게 싫어하는 거였지만, 좀 독해지자.
[보라. 저렇게 여유 있게 경쟁자를 가지고 노는 녀석을 상대로 어찌 이길 수 있단 말인가?]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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